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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hang, Youngmoon

우리음악 기반의 동시대적 새로움을 꿈꾸며 #2


한국의 장단, 세상의 음악을 품다

클래식 시대 음악 작품의 미약한 기반에도 불구하고 영미권의 대중음악은 왜 대중음악 시대에 절대적인 리더가 될 수 있었을까? ‘언어’를 통해 그 이유를 고민해보았다. 언어가 감각적으로 리듬을 받아들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생활호흡’에서 리듬의 해석이 생겨나는 것으로 가정해 볼 수 있다. 음계의 산출과 멜로디 표현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면 전례를 받아들여 리듬과의 결합을 의도해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 최초의 가설이었다.

대중음악의 시대가 도래하기 전, 신생국가인 미국은 물론이고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던 영국도 음악사적으로 걸출한 작품이나 인물을 내지 못했다. 조지 프리더릭 헨델(George Frideric Handel)조차 1726년 영국으로 귀화하기 전까지는 프로이센 출신의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Georg Friedrich Händel)이었고, 에드워드 엘가(Edward Elgar)가 등장하기 전까지 영국에는 걸출한 음악인이 없었다고 볼 정도이다. 그러한 영국이 20세기 중반 록(rock) 음악의 등장과 더불어 전세계적인 밴드들을 연이어 배출해내고, 지금까지도 미국은 세계 최대, 최고의 대중음악 시장이자 생산국이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히 미국이 대중음악 종주국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종주국의 강점이라면 영국의 존재는 설명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19세기 후반 뉴-올리언스에서 대중음악을 만들어낸 사람들은 문화적 다양성을 배경으로 한 다양한 정착민들이었다. 사실 영미권의 대중음악에 대한 장악은 거대한 자본과 기업의 힘에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가진 언어적 특징에도 중요한 요소들이 포함된다.

타악기 사용에 대해서 이미 유럽인들은 우리 사물놀이 등을 오랜 기간 접해온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 장단이 서양악기와 이루어내는 조화를 이끌어낸다면 다시 그들이 익숙한 톤과 소리가 더해져 ‘생소함’이라는 단기성 접근방법이 아니라 ‘조화와 깊이’라는 접근방법을 통해 본격적으로 ‘안정된 예술’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그들에게 보여주지 못한 것은 우리 전통문화가 아니라 우리 전통문화의 동시대적 재해석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재해석의 결여, 어찌보면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자신의 게으름이 가치있는 우리 문화를 세계적인 지속적으로 세계수준에 올려두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영어가 이러한 언어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음절박자언어(Syllable Timed Language)가 몇 개의 음절로 되어 있는가에 따라 그 발화(發話)에 소요되는 시간이 변하는 것과 달리 영어와 같은 강세박자언어(Stress Timed Language)는 해당 문장 안에 강세를 지닌 단어(주로 품사에 의해 결정)가 몇 개가 있는지가 중요하다.

이러한 강세박자언어는 하나의 문장을 말하는데 소요되는 시간과 관련하여 그 문장에 몇 개의 음절이 있는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언어에서 ‘강세’를 발생시키는 요인은 소리의 크고 작음에 있기보다는 호흡근의 사용 방법에 있다고 본다. 때문에 근본적으로 언어에서 강세를 받는 부분은 소리가 커지는 것이 아니라 ‘길어진다’. 이것이 영어와 같은 강세박자언어들의 특징이다.

다양한 악상 기호에 의해 템포를 일관되게 가져가기 보다는 표현에 따라 늘이거나 당기는 클래식 음악과는 달리 대중음악은 대개 각각의 섹션이 정해진 일정한 템포를 따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개별 음의 표현은 정해진 박자 기호 안에서 정해진 갯수의 ‘강세 Stress’를 어떻게 분할하는가의 문제다. 즉, 4/4박자를 수십개의 32분 음표로 분할하던, 1개의 온음표로 표현하던 4/4박자를 연주하는 BPM에 따르는 타이밍에 맞추어 각각의 마디선(bar line)을 넘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음악의 구조는 4/4 박자 리듬 안에서 ‘강 - 약 - 중강 - 약’으로 배열되는 강세의 구조를 다루는데 있어서 영어권 화자가 훨씬 유리하다는 점을 말해준다. 물론 영미권을 제외해도 영어를 사용하는 지역과 영어 이외에도 강세박자언어는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문화적 다양성과 환경적 노출의 정도를 감안하면 영미권은 대중음악을 제작하고, 발달시키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언어적 특성에 의해 리듬에 대한 감각과 근본적인 이해와 관계된 깊이의 상관관계를 고민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한 가지 예로 많은 대중음악인들은 ‘리듬’과 ‘그루브’라는 것을 두고 평생을 고민한다. 특히, 비영어권 연주자들에게는 피부에 와닿는 문제일 것이다.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Noam Chomsky)의 언어습득장치 이론(Language Acquistion Device Theory)과 Penfield and Roberts, Lenneberg, Scovel 등이 주장한 결정적 시기 이론(Critical Period Theory) 등은 특정 연령 이전에 해당 언어 환경 속에 놓이지 않으면 그 언어의 완연한 특성 특히 음성학적 특성을 습득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석굴암'이 헬레니즘의 문화적 배경과 실크로드라는 대개척의 역사 그리고 인도와 네팔의 문화적 배경을 우리가 우리 땅에 구현하면서도 불상 얼굴이 초연한 표정을 하고 있을 뿐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거나 설명하려들지 않는 것처럼, 음악은 그 의미를 소리와 느낌 같은 매개를 이용해 전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성장의 가능성을 여건적으로 불리한 부분을 극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강점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시작했다는 것도 눈에 띈다.

이러한 화학적 결합의 뼈대로는 우리 전통음악의 장단이 사용되었는데 많은 우리나라의 음악도들이 소위 '서양적 그루브(groove)'라는 측면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 전통 장단 위에 모달(modal)과 프리재즈적으로 운영하는 재즈 연주가 더해진 것은 팀이 가진 강점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시도인 것이다.

굳이 촘스키의 언어습득장치 이론을 언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른 문화에서 비롯된 것을 우리 것보다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아마도 상당한 계산착오가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재미있게도 이번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참여하여 현지 언론으로부터 타악에 대한 평가는 크게 다루어지지 않았는데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하나는 이미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한국의 전통타악이 ‘익숙한 것’이 되어 새로운 것을 찾기 힘들다는 점과 또 다른 하나는 그만큼 서양악기들과 전통타악의 조화가 편안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부분이다.

기본적으로 '고전'에 대한 이해와 보존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때문에 '재해석' 이전에 존재하는 고전 자체를 알리는 것의 중요성은 실상 별도로 언급하지 않더라도 사회통념적으로 이해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 뒤에 놓여있는 새로움과 재해석이라는 과업에 있어서는 또 다른 고민이 다가온다. 앞으로 미개척지를 향해 가고 싶다면, 그리고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어보고 싶다면 가능한한 넓고, 깊은 범위의 지정학적, 인류학적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은 자명한 현실이 아닐까 한다.

새로움의 생소함이 일상의 익숙함이 되기까지

창작분야는 모듈화(modularization)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실상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퓨전'이라는 표현을 내세워 많은 분야들이 모듈화된 조합 방식을 택하는 오류를 범한다. 언어가 감각적으로 리듬을 받아들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생활호흡’에서 리듬의 해석이 생겨나는 것으로 가정해 볼 수 있다.

비교적 최근 우리의 일상어로 자리잡은 표현 가운데에 '멘붕'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 단어는 영어의 멘탈(mental)과 붕괴(崩壞)가 합쳐진 표현이다. 이 멘탈이라는 표현은 중세 영어가 라틴어 'mentalis'를 받아들이면서 만들어진 것인데, 더 오래된 어원들을 연구해보면 산스크리트어의 'manas'와 라틴어의 'mens'를 독일어가 수용한 것을 고대 영어가 다시 수용한 것이다. 흔히 이렇게 외래어와의 혼용을 하게 되면 '속어' 정도로 취급하는 것이 우리 사회와 국어계의 오만이지만, 그 단어가 오늘날 우리 사이에서 자연발현된 것은 결코 쉽지 않은 배경을 가지고 있다.

모든 것이 처음 사용되거나 혹은 새롭게 재조합되면 수용과정이 쉽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그리고 조금 더 정확한 평가는 같은 순간 동시대적(contemporary)으로 되기보다는 그 수용과정 혹은 거부과정이 어느 정도 진행된 연후에나 가능하게 된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고 더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그것들이 체화되어 간다면 특정한 장단의 이름, 특정한 표현을 위한 용어들이 점차 '세움 SE:UM'이라는 물 속으로 희석되어 새로운 용액이 만들어 질 것이다. 그후에는 분석이 필요하지 않은 이상 새롭게 만들어진 용액의 이름이 이 팀을 표현하는 용어로 자리잡게 될 것이고, 그러한 단계까지 부단한 연구와 시도들이 필요할 것이 틀림없다.

이제는 김치와 막걸리 뿐만 아니라 정말 수준높게 만들어지는 우리 예술들을 세계에 선보이고, 실험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아니, 이미 상당히 늦었다. 중국은 이미 모든 분야에서 주변국들을 추월하고 있고, 일본은 그들의 문화를 이미 유럽을 비롯한 세계 속에 아주 깊숙히 집어넣었다.

창작분야는 모듈화(modularization)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실상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퓨전'이라는 표현을 내세워 많은 분야들이 모듈화된 조합 방식을 택하는 오류를 범한다. 마치 소위 '메카닉 만화' 속 로봇처럼 변신하고 합체하듯이 말이다. 김치나 막걸리가 발효나 숙성이 필요함을 이해했다면, 이제 예술에서도 그러한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을 시기가 되었으리라 믿어본다.

오랜 옛날부터 이어지고 있는,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이 과정들과 흐름들 속에서 우리의 의미는 무엇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이해하고, 깨닫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야 말로 앞으로 우리 문화예술이 가진 힘과 가능성을 세계에 보여줄 수 있는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 예술에 필요한 것은 내재화와 화학적 결합을 통해 '다른 것' 혹은 '새로운 것'이 등장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88 서울올림픽 개막식 당시 서구식 의복을 입은 한 소년이 넓은 운동장을 굴렁쇠 하나를 굴리며 달리던 연출을 해낸 것처럼, 요소간 조합이 아닌 새롭고, 다른, 깊이있는 표현이 더 절실히 필요한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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