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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hang, Youngmoon

우리음악 기반의 동시대적 새로움을 꿈꾸며 #1


같은 대상에 대한 다른 생각

1) 유럽, 특히 북부 유럽의 화장실에는 배수구멍이 없다. 2) 욕실에도 욕조, 샤워부스 밖 공간은 카펫이 깔려있다. 3)수세식 변기에는 물이 트랩 입구까지만 채워져있다. 4) 세면대의 크기가 작은 곳이 많다. 5) 공공화장실 대부분이 유료로 운영된다.

유럽은 악성 수질 속에 용해되어 있는 석회성분 때문에 배관의 교체를 잠시라도 늦추게 되면 침전된 석회성분이 화장실 배관을 막아 화장실이 막히게 된다. 유럽 화장실의 변기 속은 채워지지 않는 것도 수질 속의 석회질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면의 바다와 많은 강줄기가 있어 비교적 물이 풍부한 지역으로, 물을 흘려보내며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조선후기 오물 폐기가 만연하여 지하수 오염을 경험하기 전까지는 비교적 쉽게 우물을 확보하여 식수 공급이 가능했다.

일본의 경우 특정한 목욕 문화가 정착되어 있어 서양식 설비를 받아들이면서도 욕조의 특성에 일본의 사고 방식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일본의 욕조는 대개 길지 않고 깊은 모양이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양의 설비를 그대로 받아들여 긴 욕조가 많다. 그러나 카펫을 설치하지 않고 반드시 배수구멍을 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우리는 ‘서양의 도구들’을 수용하고 살아가지만 사용하는 방식에서는 ‘우리의 방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같은 설비를 이용함에 있어 문화적 차이를 극심하게 겪게 되기 때문에 오히려 혼란이 가중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실생활 뿐만 아니라 서양에서 수입해 온 문화예술 전반에서도 상당히 드러난다.

동일 혹은 유사한 시설 / 상이한 사용 방식

차이를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위한, 가장 사적인 공간인 화장실을 비교해보면 우리나라와 유럽은 동일한 시설을 사용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사용방법에는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 흥미롭다.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하는 공간의 동일한 시설, 상이한 방식을 생각해보면 우리 문화예술의 세계화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유럽에 도착해 그들의 화장실을 접하며 고민의 화두가 조금 더 명확해짐을 느꼈다.

새로운 문화예술의 탄생

장건의 실크로드 개척은 의도된 것이기보다 '월씨들'을 찾아 한나라의 군사동맹을 위한 목적으로 시작된 것이 10여년의 방황으로 이어지면서 얻어진 것이다. 사실상 방황과 시행착오의 산물이다. 동/서양 교류 혹은 문명의 결합이 시작된 것은 19세기 후반의 일이 아니라 기원전부터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들이다. 같은 도구, 같은 대상을 두고 살아가는 환경과 관습 등에 따라 활용하는 방식은 다양하게 변화된다.

장건(張騫)은 기원전 114년까지 생존했던 인물로, 중국 한나라의 외교관이었다. 그는 로마가 이스라엘 지배를 시작하기도 전(기원전 63년)에 중국과 서역을 연결하는 실크로드를 개척하는데 최대의 공헌을 한 인물이다. 이러한 개척의 역사를 기반으로 중국은 불교를 받아들일 수 있었고, 이러한 루트를 통해 중국에 들어간 불교는 우리나라까지 전파된다.

초기 불교는 자신의 존재를 모든 윤회의 우주 속에서 대반열반에 이른 붓다의 형상화를 금기시했는데, 이러한 금기는 불교의 대중화와 함께 사라져갔고 그 중심에는 간다라의 불교 미술이 있었다. 간다라는 페르시아와 마케도니아의 지배를 받았는데, 재미있게도 두 문명은 인도유럽어족의 사고기반을 가진 문명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하는 미학들이 발달하였던 두 문명의 지배를 받았던 간다라가 불교 미술을 태동시킨 것은 마케도니아 즉 헬레니즘 미술의 영향하에 있었던 시절이었다.

결국 붓다의 모습을 형상화한 불교미술의 사고방식이라는 것은 헬레니즘의 사고방식이었던 것이다. 알지 못하던 사이, 신라의 찬란한 불교미술은 그리스 신화를 시각화한 유럽의 헬레니즘 예술과 교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교류들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예술에 새로운 방향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신라인들은 어쩌면 자신들도 알지 못하던 사이에 헬레니즘 미술을 자신들의 정체성에 맞추어 재해석했다. 빈센트 반 고흐가 일본의 민속화풍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던 것처럼 한 사람의 예술가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전세계인이 음악을 듣는 방식을 바꾸어 놓은 대중음악과 재즈의 탄생을 이끌어낸 아프리카와 유럽 문명의 만남도 그러할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위대한 아니 굳이 '위대한'이라는 수식어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더라도 주요한 예술 작품의 탄생은 예술가에 의한 다양한 요소들에 대한 '만남의 중재' 가운데에 탄생한다.

재즈와 대중음악, 다양한 문화 융합의 산물

블루스, 재즈로부터 시작된 서양의 대중음악은 다문화/문화다양성의 산물이다. 하루 아침에 누군가의 아이디어로부터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새로운 문화예술은 다양한 검증과정을 거친다. 그 지속성은 개성과 보편성이 어느 정도로 결합되는가에 있다고 보여진다. 혼자만의 고민과 다양한 소통, 지역적인 것과 광범위한 것, 보편적인 것과 독특한 것 모든 것이 적절히 뒤섞이는 것이 중요하다.

19세기가 저물고 있을 무렵, 미국의 남부 지방에 위치한 뉴-올리언스라는 도시에서는 '대중음악'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문화가 탄생하고 있었다. 유럽의 화성적 요소와 서부 아프리카 지역의 리듬이 만나 생겨난 이 흥미로운 음악은 머지않아 재즈(Jazz)라는 장르의 기반이 된다. 당시 뉴-올리언스에는 전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있었다. 도시가 수용해야 했던 문화적 다양성은 이러한 두 요소의 중재를 촉진하였고, 이렇게 태동한 재즈는 미국 대륙을 타고 북으로 올라가며 점차 그 모양새를 다듬어간다. 이렇게 만들어진 음악은 이후 다양한 유형의 대중음악을 탄생시키며 유례가 없던 거대한 음악씬을 만들어낸다.

대중음악의 탄생은 음악의 생산, 공연, 소비의 양상을 완전히 바꾸었고, 에디슨(Thomas Edison)이 발명한 축음기와 음악의 ‘보관’이 가능해지면서 또 한 번 큰 변화를 맞게 된다. 중요한 것은, 새로움이란 단순히 누군가의 기발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들이 뒤섞이며 그동안 알지 못했던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19세기 후반, 미국 남부의 한 항구도시가 새로운 유형의 예술을 탄생시킨 것은 이러한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뒤섞임과 상업성이라는 정제과정을 통해 지속적인 검증을 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재즈가 점차 북부로, 대도시로 이동하고, 미국의 2차 대전 참전이라는 변수와 더불어 점차 그 편성이 작아지게 된 것도 오늘날 대중음악의 형태를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실크로드가 시작한 문명의 충돌과 결합 그리고 삼국시대부터 수용해 온 그리스 미술에 대한 신라인들의 재해석 그리고 한차례 서구 문물의 폭격을 경험하고, 플루서(Vilém Flusser)가 주장한 텔레마틱 사회(Telematic Society)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또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우리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의 융화

대위법(counterpoint)에 기본을 두고 있는 서양의 화성이 음향적 특성에 집중되어 있다면 우리 전통음악의 기법들은 상당히 시각적인 측면이 많다. 즉, 다감각적이다. 중점과 목적의 차이는 근본적으로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보통이다. 서로 다른 두 가지를 섞어 하나로 만들어 내는 것은 그만큼 오랜 시행착오와 고민의 시간이 필요하다. 단기간에 결과를 얻으려는 생각에 함정이 있다.

현재까지 우리 전통음악에는 다양한 개량 악기들이 등장하였다. 개량된 악기들은 음역의 폭이 넓고, 평균율 조율에 대한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에 국악기로 서양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 서양의 평균율은 반음간격이 일정한 조율 방식이다. 그에 반해 우리 음악의 조율은 치밀한 수학적 결론 도출보다는 자연의 움직임 등을 소리로 묘사하는 다감각성을 지니고 있다. 삼분손익법이라는 체계가 있지만 이것은 서양의 평균율과는 매우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삼분손익법이란 12율을 산출해 내는 음률산정법으로 12율의 기본인 황종 '율관'에서 시작하여 삼분손일(三分損一)과 삼분익일(三分益一)을 교대로 하여 12율관의 길이를 정하는 법칙이다. 산출된 12율은 서양 음악의 12반음 체계와 그 숫자는 같으나, 음정 산출 방법의 차이로 서양의 12반음과는 그 음의 간격이 다르다.

(삼분손익이 현시점과 현시점까지의 우리 음악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고려하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는 점에 대한 논의가 있어 해당 부분의 색을 흐리게 만들었습니다. 세움 SE:UM 의 가야금 주자인 이준씨의 지적에 따르면 서양 음계도 고대 피타고라스의 방식을 현재 쓰지 않는 것처럼 삼분손익법이 전통음악의 악기 및 형성 등에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음악과 음계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사고가 서양과는 다른 측면이 있었다는 점을 위해 이해해두는 것이 가장 적절한 수용방법이라 생각됩니다)

악기 또한 모든 인류의 인공물(artificial)이 그러하듯 변화, 개량, 발전 등의 과정을 통해 그 형태나 기능까지도 천천히 변하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개량에 앞서 고민되어야 할 많은 문제들을 너무 많이 지나친 것도 사실이고, 서양음악과의 지나치게 급격한 조화를 시도한 것도 사실이다.

실상 영국 에든버러 현지에서도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던 것은 우리 전통 가야금(무명줄, 오동나무, 12현)이었다. 타악 분야는 이미 많은 노출을 경험하고 더 이상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는 점도 발견했다. 관중 가운데 일부는 이미 우리 장단의 기-경-결-해 패턴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었으며 심지어는 해외진출에 성공한 소위 ‘퓨전국악’ 팀들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서양문화에 오래 노출되어 왔으나, 정작 ‘본토의 문화’, 이를테면 샤워부스나 화장실 사용에 대해서도 당황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들이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반대로 저들이 우리 문화예술을 더 깊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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