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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움 아트디렉터 방영문

세움 SE:UM 콘텐츠의 시각화 작업


올해 문화공작소 세움에 본격적으로 합류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사안은 소위 ‘시각적 정체성 Visual Identity’ 측면이었다. 더불어서 이것 자체가 단체를 특정하는 것을 피하고자 하는 것도 함께 생각하고 있었다. 요점은, 이것은 로고라던가 특정한 색상을 통해 회사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고정적인 작업이라기 보다는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라는 것에 중점을 둔 것이다. 이 과정을 위해 - 항상 이러한 준비가 충분할 수는 없겠지만 - 유세움 대표, 김성배 음악감독과 같은 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일단의 공통분모가 될만한 것들을 정리하고, 구체적인 표현 작업을 시작했다.

1. 왜 서예(書藝 calligraphy)를 배제하였는가?

2015년도에 시작된 시각화 프로젝트에서 서예는 완전히 배제되었다. 최근에는 이러한 캘리그라피(calligraphy: 줄여서 ‘캘리’라 부르는 사람들도 많음)가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특히 국악단체들이 캘리그라피를 활용하는 빈도는 매우 높다.

<구글 검색창에 ‘국악포스터’를 검색한 결과>

결론부터 적어보자면, 나는 문화공작소 세움을 ‘국악단체’로 본 적이 없다. 회사 내부에 국악을 하는 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회사를 국악회사로 보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애초에 이러한 접근방식을 고려하지 않았다. 물론 지나가듯 이야기한 적은 있지만 회사 내부에서도 캘리그라피를 이용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특히나 이번의 작업들은 공연팀 세움 SE:UM의 작업인데, 이 팀을 국악팀으로 정의하지 않으려는 것이 우리 내부에서의 생각이기도 하다. 내부의 관점이 그렇다면 외부로 어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부의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 고유의 문화라는 것은 ‘특정한 문화’다. 다양한 이념이나 이론이 있을 수 있다. 소위 영미권의 문화를 ‘보편적’으로 보는 시각 자체에도 큰 문제가 있다. 그러나, ‘특정한 문화’를 공급하는 이들의 태도에도 분명 적지 않은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만일 우리의 것을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시스템과 시스템을 융화시키는 과정이 필요하고 이러한 과정 안에서 다양한 검증이 일어난 후에라야 ‘보편적인 것’으로 정착 가능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분명히 ‘보편적인 문화’는 그 배경에 거대한 힘이 작용하고 있다. 신약성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고, 초기 교부철학은 라틴어로 기술되었으며, 우리의 경우에도 대륙의 중국문명의 영향 아래에서 오랜 세월 한문(漢文)을 이용해 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어느 시점에서는 분명 ‘독창적인 것’이었던 시기가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의 세계는 영어의 시대(The Age of English Language)를 맞이하고 있는데, 영어의 득세는 반드시 영국의 식민지 개척, 영연방의 존재, 미국의 힘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영어는 영국이 주변국들의 침략과 식민지배로 언어의 혼재를 오랜 기간 경험한 언어이다. 윌리암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는 수많은 합성어들을 만들어냈고, 시대가 흐르면서 영어는 수많은 다른 언어들의 표현들을 흡수하며 단일언어로는 가장 많은 단어를 가지고 있는 언어 중 하나가 되었다.

나는 우리(문화공작소 세움)에게 개인을 닦음으로 완성되는 캘리그라피(calligraphy)보다는 체계와 체계를 섞는 타이포그라피(typography)적 표현이 더 적합하다고 보았다. 지식의 혁명과 기독교의 종교개혁을 불러온 것도 사실은 개인의 의지력이라기보다는 인쇄술이라는 분야가 개척되면서 가능했다. 물론, 개인의 의지와 시스템의 상호보완, 연계가 가장 중요한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2. 가느다란 서체

가느다란 서체의 도입은 곧 ‘기술의 발달’이라는 사안과 직결된다. 우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 스마트폰, 태블릿 등의 도구에서 언제부턴가 아주 가느다란 글씨를 사용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것은 기술의 발달로 해상도가 높아진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이것은 인쇄물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인쇄 기술이 발달하고 더 구체적인 표현이 가능해지면서 가느다란 서체를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미니멀(minimal)은 단순한 멋이라기보다 핵심의 도출이며 불필요한 것에 대한 배제이다. 적어도 우리가 현재 ‘진보’를 목표로 하고 있고, 성장을 계속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러한 전반적인 기술의 성취들을 시각적으로 반영하고 싶었다.

3. 사진의 사용

버몬트 뉴홀(Beaumont Newhall, June 22, 1908 – February 26, 1993)은 “사진의 역사적 궤적은 단지 두 가지로밖에 설명될 수 없다. 하나는 수많은 기술의 역사적 진화이고 다른 하나는 수많은 표현의 역사적 진화이다. 수많은 카메라들은 수많은 기술의 차이의 결과물이고, 수많은 사진들은 수많은 표현의 차이의 결과물이다. 사진의 진보는 그 시대의 기술, 표현, 이념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말한다. 가느다란 서체의 사용이 ‘기술시대의 예술’이라는 관점을 담고 있다면, 사진의 사용은 그러한 관점의 또 다른 아이콘이라 할 수 있다. 컴퓨터 그래픽이 이제는 실사와 구분하기 힘든 단계까지 발달한 현시점에서 사진이 기술시대의 예술을 대변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 될 수 있겠지만, 여전히 사진이라는 분야는 20세기라는 상징적인 시대와 더불어 ‘기술시대’의 아이콘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사진은 손으로 그리는 그림과는 기호학적으로 매우 다른 예술이다. 그림은 구도(composition)를 잡는 단계에서부터 그리는 사람의 완전한 재해석이다. 관념적인 것을 벗어나 시각적 인상으로 표현되는 색채를 구현하는 것의 여부도 그리는 사람의 의지에 달려있다. 그렇지만, 사진은 기본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그것이 속한 ‘현재’에 행위로 연결한다. 사실 사진을 얹는 이유에는 그 외에도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최종적으로는 내가 사진을 하는 사람이기에 그러할 것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이미지 몇 장 만드는데 지나치게 많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냐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우리 단체의 음악인들도 짧은 시간의 표현을 위해 자신을 돌아보고, 삶을 대해보고 나아가서는 우주를 심상한다고 생각한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이론적 기본기와 표현 기법도 중요하지만 각 분야의 예술가들이 함께 협업(collaboration)한다는 것은 근접한 무게의 진지함을 형성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타임(TIME)지가 20세기의 대표인물로 꼽은 사람은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4 March 1879 – 18 April 1955)이다. 우주 안에서 절대적인 중심을 없애고, 몇 개의 기호로 간결하고 유려하게 그 원리를 기술하여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어 놓은 그의 통찰은 과학과 기술의 분야를 넘어서 인문과 예술의 세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사람들은 당연히 기술적 숙련과 완성에 찬사를 보낸다. 그렇지만 보편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관점과 원리를 갖는 것이 더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가능성'이 농후한 작업이 된다. 나는 예술에서도 이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위대한 예술가는 기술적 완성도를 추구한 이들이기보다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이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팀이 이 분야에서 매우 의미있는 참고대상(reference)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기에,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던지 관점이 있고, 그 저변에 확장과 지속이 가능한 원리를 품고 있는 예술행동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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